Reviews/문학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류시명
2022. 6. 10. 01:0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저자: 룰루 밀러
- 출판사: 곰출판
북마크
- 54쪽: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느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58쪽: 암울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그런 일을 잘했던 건 아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는 내게 종종 아버지와는 다른 효과를 냈다.
- 141쪽: 마치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메리 포핀스의 마법 가방처럼 긍정적 착각이 가져다주는 온갖 좋은(마음 깊이 느껴지는 잘 살고 있다는 느낌, 일과 인간관계에서 더 많은 성공, 심지어 더 좋은 신체 건강까지) 이야기들을 찾아 읽는 동안, 어쩌면 내가 개미보다 나을 게 없으니 겸손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느라 아버지가 나를 쓸데없이 헤매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150쪽: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높은 자존감이 모두 나쁜 건 아니라는 점도 재빨리 덧붙였다. ...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비판을 받아도 자기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지 않으므로 높은 자존감은 당사자를 기이할 정도로 평화롭게(그들의 표현으로는 '이례적으로 비공격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자존감이 높기는 하지만 자존감에 댛나 위협을 쉽게 느끼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위험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바우 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2쪽: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데이비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쓴 루서 스피어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확신과 자기기만과 단호함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강화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기 길을 막는 모든 걸 뭉개버릴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능력은 자신의 길이 진보로 이어질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면서 몇 배는 더 커졌다.' ...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그 심리학자들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
- 206쪽: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하다는 증거였다.
- 227쪽: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분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 263쪽: 그러다가 물고기에 관해 생각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 266쪽: 과학자들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감상
과학 소설의 형식으로 써진 에세이이자 전기. 정말 재밌게 읽었다.
최근에 '이 세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의미는 없고, 이 세상은 깊이보다는 평면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이런 생각은 나를 좀더 가볍고 편안하게 살게 해주었지만 허무주의의 덫에 밀어넣으려 했다.
그 허무주의에 대해 이 책은 주관적 의미를 대답으로 내놓는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리 모두는 점 위의 점 위의 점 수준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라는 관점은 개인의 수만큼 존재하므로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