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s/문학

리커버링

류시명 2022. 6. 3. 20:38

리커버링

  •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
  •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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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쪽: 모임에 가기 전, 나는 모임이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가 상상해보았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 내가 말하는 방식을 칭찬하겠지, 그리고 나는 손사래를 치겠지, 뭘요, 제 직업이 작가인걸요, 어깨를 으쓱하고 너무 큰 의의를 두지 않으려고 애쓰겠지. 나에게도 찰스 잭슨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야기를 멋지게 하려다가 겸손을 잊어버린 것이다. 사전에 메모장을 작성해가며 연습했지만, 발표할 때는 펼쳐보지 않았다. 연습해 온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 17쪽: 술을 끊고 회복 중일 때 나는 이야기에 관해 늘 들어왔던 명제, 이야기란 독특해야 한다, 에 저항하는 공동체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야기란 전혀 독특하지 않을 때, 그것이 예전에 누군가 겪었던 것이고 앞으로 누군가 다시 겪게 될 것이라고 이해될 때 가장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 중복과 과잉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중복과 과잉 때문에 소중했다. 독창성은 이상이 아니었고, 아름다움은 요점이 아니었다.
  • 31쪽: 중독을 생각할 때 내가 떠올렸던 건 1년 동안 웨스트버지니아의 교도소에 감금되었던, 또는 맨해튼 중간 지구의 어느 병원 침대에 수갑이 채워진 채 죽음을 맞이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매일 오전 우리의 옥수수 들판 가장자리의, 작가들의 바가 아닌 술집에 모이던 늙은 백인 술꾼들, 퇴역 군인들, 농부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취한다는 것은 상상의 연료가 아니라, 감각을 마비시키는 일상의 위안에 불과했고, 그들은 폭음의 술자리가 실존적 지혜와의 접점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카버를 담배 화상 자국으로 얼룩진 손의 작가, 무릎에는 상심 어린 원고들을 쌓아둔 채 날이 밝아서야 잠이 드는 작가, 난파된 삶의 가장 황량한 곳에서 온 외교관으로 상상하기 바빴다. 나는 폭스헤드 바의 나무 칸막이에서 그의 단편 중 한 부분이 새겨진 글귀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늘 품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화장실 낙서의 소문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 43쪽: 술에 취해 기능장애를 보이는 모습에서 매력을 발견하는, 그 기능장애와 천재성의 관계를 페티시화하는, 나의 능력은 제대로 고통받은 적 없는 자의 특권이었다. 그런 나의 매혹은 수전 손택이 '흥미로운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이고 감상적인 관념'이라고 부른 것에 빚지고 있었다.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병에 걸린 사람은 '의식이 더 예리하고 심리적으로 더 복잡'하다고 여겼던 19세기 관념을 이야기한다. 질병은 '신체의 내부 장식'이 되었던 반면 건강은 '진부하고 심지어 천박'하다고 여겨졌다.
  • 58쪽: 다른 캄핑 참가자들도 분명 겁을 먹었겠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불 켜진 창문에 드리운 실루엣들이 전부였고, 그 익명의 신체들에 나는 행복과 뛰어난 사교술과 내게 결핍된 모든 것을 투영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외로움은 내 몫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불안한 상태를 타인들과 공유하기를 인색하게 거절하는, 자기비하를 가장한 이기주의였다.
  • 64쪽: 슬픔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 것처럼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는,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그 슬픔의 경계 너머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그들 나름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리스의 딸 마리본은 여섯 살 때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예술가가 되려고 애쓰는데 맨날 울어.'
  • 74쪽: 극단의 한 청년은 유랑 생활 - 컴컴한 골목길들, 램프 밝힌 병들 - 을 스케치하고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우리가 술 마시는 이유.' 그러나 리스에겐 이유 같은 건 필요한지 않았다. 아니 이유가 너무 많았다. 랜슬럿은 수많은 핑계의 첫 항목일 뿐이었다. 그녀의 소설에 대한 이런 비평이 있었다. '확장된 무대 위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의 치유책으로서 술에 취하는 것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걸 독자는 어느 때보다 또렷이 의식하게 된다.'
  • 122쪽: 하이드의 에세이가 신랄하고 청교도적이라고, 고루해빠진 절대단주자의 인신공격성 장광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는 쉬운 일일 것이다. ... 그러나 내가 하이드의 에세이에서 사랑했던 건 바로 그것, 고루한 분노였다. 광택을 문질러 벗겨버린 음주의 참상에 대한 주장, 그리고 그 참상이 창조의 엔진이 아니라 구속복이라는 확신이었다.
  • 146쪽: 퀴어 이론가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은 중독이란 물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중독자가 그 물질에 투사하는 '잉여의 신비한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그 물질에 '위안, 휴식, 아름다움, 에너지'를 주는 능력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자아를 부식시키고, 따라서 자신을 결핍으로 해석하게 된다.' 한 남자든 한 병의 와인이든, 어떤 것을 더 많이 요구하게 될수록,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 반사적으로, 암암리에 - 그것이 없다면 충분하지 않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 147쪽: 나는 중독을 '레퍼토리의 축소'로 설명하는 한 임상의사를 인터뷰했다. 나에게 그 말은 내 삶 전체가 술을 중심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술을 마시며 보낸 시간만이 아니라, 술 마실 것을 예상하며 보낸 시간, 술 마신 걸 후회하며 보낸 시간, 술 마신 걸 사과하며 보낸 시간, 언제 어떻게 다시 술을 마실까 생각하며 보낸 시간까지 모두 내가 술로 흘려보낸 삶이었다.
  • 186쪽: 모든 것이 최상이거나 최악이었다. 자아는 내가 계속 다시 섞는 최상급의 카드 한 벌이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만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전부를 원했다. 나는 그냥 못된 게 아니라 가장 천박했다. 나는 가장 변덕스러운 심장을 가졌다. 나는 지상의 위스키 사워 쓰레기였다. 마음 한구석에선 사실상 그 죄책감을 즐겼다. 죄책감은 내 평범한 삶을 대문자로 쓰고서 거기에 긴박한 상황의 날카로운 억양을 부여했다. 만약 사악함을 예술 속에 녹일 수 있다면, 나에겐 사악함이 필요했다. 몇 년 후 회복 중일 때, 누군가 자기혐오는 나르시시즘의 이면이라고 말했는데, 너무도 정곡을 찌른 말이라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이 흑백논리,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같은 천에서 잘라낸 것이었다. 그저 남자들 중의 한 남자, 또는 여자들 중의 한 여자라는 것, 단점이나 실수에 특별할 게 전혀 없는 인간이라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가장 힘들었다.
  • 201쪽: 중독자의 대부분은 음주나 약물 사용이 결핍을 메우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내가 만났던 한 여성은 자신을 물이 새는 양동이로 묘사했고, 계속해서 술로, 확인으로, 사랑으로 그 양동이를 채우려고 했다.
  • 266쪽: '당신은 정말 똑똑하군요. 그런데 그게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요.' 'AA에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생각은 곧바로 나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따금 AA의 판에 박은 듯한 말들이 지나치게 환원적이라고, 또는 그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AA에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말이 자만심을 유혹하는 그 나름의 세이렌의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자신을 그 평범한 이야기의 예외라고 여기고, 모든 경구가 당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신의 의식은 매우 복잡해서 다른 누구와도 공통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 268쪽: 잭슨은 클리블랜드의 한 AA 모임에서 다른 유형의 이야기를 시도했다. 그는 방 안 가득한 낯선 사람들에게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그리고 그의 '한정된 초상화'는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가 의문을 품으면서도 스토리텔링 행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회복 모임에서 하는 스토리텔링은 그의 베스트셀러 소설의 스토리텔링 양상과 똑같지는 않았다. 이번 스토리텔링은 자신에게 덜 투자하고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해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생각엔 알코올중독자를 그렇게도 많이 괴롭히는 게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쏟았고,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열중해 있었고, 그리고 술을 마셨습니다.'
  • 269쪽: 처음에 잭슨은 AA에 가면 '지적으로 동등한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걱정했지만, 모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지적 동류의식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확신이 더욱 커졌다. 그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버몬트주 몬트필리어의 한 AA 지분에 전화했을 때, 그들은 잭슨에게 연설자로 참여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나가서 듣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는 후원자를 통해서 접한 영국 작가 G.K. 체스턴의 한 구절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대의 삶 안에서 그대가 더 작아질 수 있다면 그대의 삶은 얼마나 더 커지겠는가. 그대는 더 자유로운 하늘 아래, 근사하고 낯선 이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그대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잭슨은 뉴잉글랜드 전역의 교회 지하실에서, 접이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술꾼의 탐닉을 또 다른 자유와 맞바꾸는 근사하고 낯선 사람들, 아니 충분히 근사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 272쪽: 우리는 예전처럼 위안 삼을 방식이 없이 하루를 지내는 방법에 관해 수다를 떨었는데, 그 안에 위안이 있었다. 세상의 날을 무디게 해줄 어떤 것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단순한 행위가 그 사람에게도 지랄 맞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들 안에 위안이 있었다.
  • 281쪽: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사운드트랙으로 상상하던 웅장한 음악은 울리지 않았다. 코가 너무 시리더니 거의 곧바로 감각이 무뎌졌다.
  • 290쪽: 내가 우울해하면 데이브는 내 이마에 두 손가락을 얹는 동작으로 내 기분이 어떻든 결국에는 지나갈 거라고 일깨워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말한 것은 진실이었다. ... 몇 년 후, 한 임상의가 전형적인 중독자 기질이란 집요하게 현재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특성이라고 설명했을 때, 나는 곧바로 이런 중독자 성격 유형은 나의 중독자 성격 유형과 큰 관련이 없다고 확신했다. 만약 내가 과거에 집착했던 게 아니라면 또는 미래에 관해 백일몽을 꾸었던 게 아니라면, 또는 미래에 관해 백일몽을 꾸었던 게 아니라면 나는 내 삶으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할수록 그 임상의의 설명이 데이브가 두 손가락으로 저지하려던 것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순간의 바깥은 결코 없을 거라는 나의 확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데이브는 우리의 시간들이 나의 계속되는 드라마로 소모되어버린다는 점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 나는 끊임없이, 한결같이 그의 방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난 낙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술을 끊어야 한다고! 그것이 내 머럿속에서 상영되던 영화였다. 그의 방문을 두드리던 야만인 같은 나의 욕구였다. 나는 그에 대한 내 요구가 지나친 건 아니라고 그가 끊임없이 확인해주기를 원했다. 물론 그것 역시 내가 그의 발밑에 놓았던 또 하나의 요구였다.
  • 331쪽: 비평가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은 중독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약물이나 물질에 '위안, 휴식, 아름다움, 에너지'를 투영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가리켜 '마법적 요소에서 기인한다고 착각한 아름다움'이라고 부른다. 나는 글쓰기와 생활 속에서 그것을 하고 있었다. 기적적인 해결책을 기대하며 - 술이 내 맥박을 뛰게 하기를 기대하고, 나의 정글 게릴라들이 숲속에서 빛나는 벌집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면서.
  • 354쪽: 어쨌거나 나는 옳은 일을 하려고 - 다시 술을 끊으려고 - 애쓰고 있었고 오늘은 나의 중대한 분수령, 나머지 삶의 첫날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결심에 대한 보상이 이 찌그러진 스테이션왜건이란 말인가? 화가 치밀었다. 술을 끊기로 했다면, 근사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해야 옳았다. 아니 적어도 콘크리트 벽으로 질주하지 않을 침착함 정도는 되찾아야 옳았다. 그런데 단주는 그렇게 작용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식이었다. 일하러 간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한다. 미안한데 차를 벽에 박았어. 내가 수리비를 내겠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렇게 한다.
  • 373쪽: 빌리 버로스 주니어는 소설 <켄터키 햄>에서 나코팜을 나온 후 트롤 어선에서 일한 경험을 썼다. '렉싱턴에서 내가 절대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했다.' 그는 그 일이 좋았다. 그에게 일은 중독의 반대말이엇다. '일이 무얼 하는지 아는가? 하나의 상수를 제공해준다. 일은 시간을 구성한다. ... 해결책은 역시 실행되어야 하며 거기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 해결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깨닫느다. 해결한다는 것. 적응한다는 것, 집중한다는 것은.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밖으로 나가서 까다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재정비하는 것에 관한 얘기다.'
  • 385쪽: 그는 그런생각이 들었다(아니 그것을 엿들었던 것 같다). 삶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던 별개의 극적인 순간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간에 드러난다고. 삶이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매시간 매분,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의미하는 모든 것이다. 인간에게 그것을 알아차릴 의식만 있다면 좋으련만... 극적이든 시시하든 간에 흘러가는 매 순간 매 단계가 삶인 것을.
  • 391쪽: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중 누구도 믿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이름으로 축복받기란 정직하지 못한 일 같았다. 믿으려고 억지로 더 많이 애쓸수록, 그 믿음은 더 거짓되다고 나는 믿었다. 세월이 흐른 후, 회복은 이런 생각을 뒤집어버렸다. 그들을 믿을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고, 의도성은 의도하지 않은 욕구만큼이나 진실하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행동은 믿음을 시험하기보다는 믿음을 끌어낼 수 있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언젠가 모임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옛날에는 저는 믿어야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지금 보니 제가 거꾸로 생각했던 거였어요.' 오랫동안 나는 믿음과 같은 부류의 행위, 즉 자신을 아는 것, 나다운 행동을 하는 것에서는 진정성이 전부라고 믿었다. 그러나 음주에 관한 한, 진실한 대화 - 친구들, 치료사들, 엄마, 남자 친구들과의 대화 - 를 수없이 나누면서 내 동기를 분석해왔지만, 이 모든 자기이해도 나를 강박충동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다. 이 파열된 삼단논법 - 만약 내가 나를 이해한다면, 나는 나아질 것이다 - 은 내가 자기인식 자체를 숭배하게된 방식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자기인식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너답게 행동하라라는 세속적인 인본주의 브랜드였다. 이것을 도치시킨다면? 행동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다르게 알라. 모임에 참석하고, 의례에 참석하고, 대화에 참석하는 것, 이는 당신이 그것을 하면서 무엇을 느끼든 상관없이 진실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당신이 믿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 이는 진정성의 부재라기보다는 진정성의 증거였다.
  • 426쪽: AA 빅북은 처음에 <탈출구>라고 불렸다. 무엇을 빠져나가는 탈출구일까? 단지 음주뿐 아니라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비좁은 자아의 공간을 빠져나가는 탈출구다.
  • 450쪽: 그들은 요컨대, 진정 나를 이해했기 때문에 경청해주었다. 그들은 약을 끊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욕구, 자신을 죽이고 있는 바로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 약과 술이 있는 삶도 그것이 없는 삶도 상상할 수 없는 상태로 어정쩡히 지내왔다. 그들은 또한 헛소리와 조작, 그리고 끔찍한 진실을 회피하기 위한 무의미한 지식의 포장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어러 날 동안 그들이 나를 비웃고, 나의 술책(지금 와서 보니 한심할 만큼 동료 중독자가 알아차리기 쉬운)을 놀리고, 내일은 매우 다르게 보일 테니 오늘은 약물을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해준 게 내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충고는 도움이라기에는 너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매우 결정적이었다.
  • 464쪽: 그 모임에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잃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훨씬 더 많은 것들과 싸우고 있는 그 방의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는 것들이 어떻게 다가갈지 조심스러웠다. ... 내 중독과 그들의 중독을 비교하는 것이 그들이 고통받았던 시기를 잘못 이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고통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출석을 통해, 나도 그걸 겪었어요, 라고 암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이야기는 상실보다는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이 공통성을 찾는 방식은 놀라웠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나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짐작함으로써 다름을 투영하는 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들을 모른 척할 필요는 없었다. 공명은 융합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 똑같은 삶을 살았던 척하는 게 아니었다. 공명이 뜻하는 건 경청이었다. 사람들이 주먹으로 얼굴을 마은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음주는 우리 모두의 몸을 공격받기 쉽게 만들었다. 우리는 완벽히 똑같은 척하기 위해,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거기 모인 게 아니었다. 우리가 거기 모인 건 함께한다는 가능성에 우리 마음을 열기 위해서였다.
  • 493쪽: 내가 썼던 도덕극에서는 상황이 단순했다. 나는 고통받았고, 데이브는 나의 고통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 그동안 나는 우리 사이의 문제는 데이브가 나의 요구를 회피하는 데 있다고 확신했었다. 그는 인간적 형태의 결핍을 보여주는, 필요한 것 없음의 화신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 그 얼굴은 종종 친절하고, 종종 경청하고, 종종 호기심 어려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그것을 예상하기 시작했고, 그가 물러선다고 느끼고 그 원인은 나의 부족함이라고 느끼고, 이렇게 느끼고 저렇게 느끼고 했던 것이다.
  • 577쪽: 그게 다였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독수리는 없었다. 나는 그 벤치에서 내 옆에 앉아 있는 계약 논리의 오랜 유령을 느꼈다. 내가 이 순례를 한다면,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술을 끊으려는 이 소녀를 보살핀다면, 우리는 맹금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이 남자와 함께 지내면서 술을 끊는다면, 우리는 함께 삶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글이 빼곡한 공책을 기대하던 곳에는 빈 공책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탈탈 털다시피 했다. 나는 메시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카버가 믿었던 프로그램은 사실 준 만큼 받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글의 다음 쪽을 펼쳐 간단히 이렇게 적었다. 감사합니다.

감상

스무 살엔 특별해지고 싶었고 서른 살인 지금은 평범해지고 싶다.

스무 살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믿었다. 나는 그야말로 '최상금의 표현'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아니 삶에 그 표현들을 붙여댔다.

나는 무언가를 제일 잘해야돼. 내가 제일 슬퍼. 내가 제일 외로워. 내가 제일 성실해. 내가 제일 똑똑해. 나는 특별해.

어느 책의 표현처럼 나는 복잡하게 외롭고 다른 사람은 단순하게 무정해보였다.

하지만 나의 우울은 악세사리였다.

읽는 내내 내 예전을 글로 표현해준 것 같았다.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내 옛날에 대해 설명받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 계속 나오는 평범함에 대한 예찬.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만 삶에서 중요한 게 아닌, 매 분 매 초가 중요하다는 매시지는 요즘 내가 모토로 삼고 있다.

나를 구원해줄 환상적인 무언가는 말 그대로 환상 속에만 존재하고,

어떤 특별함을 기다리며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차근차근 살아가는 삶.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아를 줄이는 대신 그 공간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삶.

아직 명확하게 머릿속에 그려지진 않지만 적어도 10년 전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그런 무던한 삶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무 살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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